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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과 의미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는 화산(華山)이 있는데, 산이 너무 아름다워 '빛날 화'를 넣어 우암 송시열이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전경의 한쪽에는 금강이 굽어보이고, 다른 한쪽은 은진과 충청도로 뻗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산의 줄기를 따라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면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나바위(羅巖)’라고 합니다.
1897년 화산리 나바위 부락에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동학 농민운동때 망한 김여산의 집을 구입해 나바위 성당을 신축하고 1907년에 완공하게 됩니다. 1916년에 일본에서 온 페랑신부의 도움으로 외벽을 벽돌벽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였으며, 이때 바깥 툇마루를 없애 회랑을 만들고, 전면에 벽돌조 종탑을 증축하였습니다. 1922년에는 회랑을 보수하였고, 1980년대 이후 6차례이상 보수 및 주변 증축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성당 뒤편에는 화산언덕이 있는데 언덕 위에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기념비가 있고, ‘망금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강 황산포, 전국에서 최초로 신사참배 거부사태를 일으킨 성당에서 운영한 ‘계명학교’ 등 역사성과 장소성, 그리고 경관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변했습니다. 1987년에 사적 31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나바위 성당은 디자인면에서 다음의 특색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를 존중하는 공간디자인
유교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당시의 남녀칠세 부동석의 문화사상이 반영되어, 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남녀석을 구분하기 위해 회중석 가운데 기둥이 있고 그 사이는 칸막이를 설치되어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결합된 디자인
• 한국의 전통 한옥가옥에 서양식 건축물을 결합시켜 독특한 구조를 이룹니다.
• 당시 유교사상에 뿌리가 깊은 한국의 정서와 문화적인 동질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자 하였고, 역사적 당위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친환경적 디자인
• 망금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조각품을 자연 그대로의 바위 위에 설치하였는데 그 자리는 오래전에도 암자였다고 합니다. 금강을 바라보며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애삼존불을 새겨 놓았던 자리로 더욱더 신성함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디자인
그로테스크는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서양 장식모양의 일종입니다. 1 '그로트'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고 동물, 식물, 가면, 건축의 일부 등 각종 모티브를 곡선모양으로 연결해 복잡하게 구성한 것을 말합니다. 로마 시대의 벽화에 처음 사용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특히 즐겨 쓰였으며, 그 후 장식적 패턴을 떠나서 기괴하고 환상적인 표현을 통상 그로테스크의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격변기나 혼란기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고 문학, 연극, 영화 예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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